가방에 책 넣느라 손에 들었던 비닐봉지를 아들에게 건넸던 엄마는
다시 봉지를 되돌려 받자 이같이 말했다.
옆에 있던 아들은 6살 정도로 추정됐다.
어깨를 으쓱한 아이는 점퍼 모자를 머리에 쓰고는 “이제 내려야 해요”라고 말했다.
웃으며 아들 머리를 쓰다듬은 엄마는 잠시 후 열차가 멈추자 아들 손을 붙잡고 정답게 문을 나섰다.
최근 기자가 지하철 1호선에서 목격한 모자(母子)의 훈훈한 일화다.
방금 이야기처럼 자녀에게 “고마워”라며 쉽게 말하는 부모도 있지만 그렇지 못해
고민 털어놓는 부모도 다수로 추정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만 살펴도
아이들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며 묻는 게시물이 보인다.
올해 4살 딸을 둔 엄마 이모(38)씨는 아직 아이에게 “고마워”나 “미안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이씨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상황에서 표현하면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부부는 머리로 알지만 입 밖으로 내보내기가 쉽지 않다.
이씨는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렵다”고 말했다.
아이 앞에서 어른의 잘못 인정이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은 기분이라는 거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이씨 부부의 생각은 매우 잘못됐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모른 척 얼른 넘기려는 행동은
자녀의 사회성 발달에도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전 세대에서 같은 말을 듣지 못한 탓에 요즘 부모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자녀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 태도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서 아이에게 올바른 행동을 강요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 교육에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임 대표는 사과의 ‘333법칙’을 제시했다.
잘못을 저지른 뒤 3초 안에 사과하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는 시간이 30분을 넘기면 안 되고,
사과한 지 최소 3시간이 지난 후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라는 뜻이다.
임 대표의 설명을 이씨에게 적용해보자.
딸 앞에서 잘못한 뒤 3초 안에 사과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이 30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3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가 사과했는데 넌 왜 그래?”라고 말한다면?
관계가 더 악화할 수도 있다.
“고맙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입 밖에 꺼내기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해 ‘내가 말하지 않아도 고마워하는 걸 알겠지’라며 넘어가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 멘트는 TV에서나 적용된다.
임 대표는 “홀로 거울을 보고서라도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습관화되면 아이 앞에서도 쉽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들으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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