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알아요? 그것도 안 읽었으면 곤란한데…." 논술 강사 A씨는 초등생에게 최근 이런 말을 들었다. 이 초등생은 평소 고전 제목을 열거하며 강사들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학원에서 유명하다. A씨는 "이런 아이가 한둘이 아니다.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초등생이 부쩍 늘어 힘에 부친다"고 했다.







# 주부 B(40·인천 남동구)씨는 요즘 화를 못 참는 초등 1학년 아들이 걱정스럽다. 며칠 전엔 아들이 친구와 술래잡기하다 '이제 네가 술래야'라는 말에 분노해 주먹을 날렸다. B씨는 "앞으로 학교나 학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지 고민"이라며 한숨지었다.







최근 자기조절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작은 일에 쉽게 화내며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증가 추세다. 성인 사이에서 회자하던 증상이 이제 어린 학생들에게도 확산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팀 프로젝트가 늘어난 교실에선 '당연히 내가 리더'라고 생각하는 '자기애(自己愛)적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트러블을 일으킨다. 남을 무시하면서 자기를 과시하는 행태를 보여서다. 이런 문제를 겪는 아이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제일 잘났어" 지나친 자기과시로 마찰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행동하는 '자기애 과잉'은 최근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 비중이 증가하면서 더 도드라진다. 자신이 리더를 맡아야 한다고 우기는 아이가 팀원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누가 봐도 최고점에 못 미치는 수행평가 결과물을 제출하고도 '내가 만점 못 받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따지는 경우도 있다.







과도한 자기애는 부모가 떠받들 듯 키운 아이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부족함 없이 자라거나 형제·자매 없는 외동아이에게도 흔하다. 튀는 행동을 무조건 개성이라고 해석하는 사회 흐름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명찬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가족의 지원과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자란 아이들이 집 밖에서 자신의 객관적 위치와 능력을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이런 아이 중엔 자기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일부러 무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가 또래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과학 캠프를 관리했던 C씨는 단체 행렬을 이탈해 과자 사러 가는 초등생을 저지하다가 "내가 내 돈 주고 가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항의를 들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C씨를 계속 따라다니며 "어느 대학 나와서 이 일 하느냐" "한 달에 200만원은 버느냐"며 비꼬기도 했다. C씨는 결국 캠프 종료 후 일을 그만두고 상담 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면 크게 분노하거나 심하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성향을 바로잡지 못한 채 성장하면 '자기애성 성격 장애'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상담실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과 트러블이 생겨도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고, 부모도 '어릴 때는 다 그렇다'고 여기기 일쑤다. 임영주 신구대 유아교육과 교수(부모교육연구소장)는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칭찬만 남발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가족 토론이나 대화를 자주 하면서 타인 말을 경청하는 법을 익히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꾸중 한마디에도 '헐크'로 변하는 아이들







그런가 하면, 사소한 일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하는 아동·청소년도 늘고 있다. 초등 5학년생 아들을 둔 주부 D(39·경기 오산)씨도 아이 때문에 고민이 깊다. 평소엔 모범생인 아들이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생기면 불같이 화를 내기 때문이다. D씨는 "동생이 머리카락을 만졌다거나 저녁 밥상 차림이 조금만 늦어지면 폭발하듯 화낸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표출하는 증상을 흔히 '분노조절장애'라고 부른다. 정확한 병명은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성장과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 사춘기엔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소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국립중앙의료원 정신과 전문의)는 "청소년은 뇌가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며 "유전적 요인이나 스트레스 같은 외부 환경적 요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과 질환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 경쟁과 과도한 자기애 역시 10대 분노조절장애 환자 수가 높아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노규식 정신과 전문의는 "분노를 조절 못 하는 청소년이 늘어난 것은 과도한 입시 경쟁과 부모의 과잉보호로 대인관계 능력을 기르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증상이 악화할 경우, 극단적 범죄 행위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달 경기도 성남에서 주먹과 발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고교생 E군이 이런 경우다. 조사 결과, E군은 "아버지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꾸지람하자 이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이사는 "이 상태로 성인이 되면 인간관계에서 겪는 사소한 갈등에도 극단적 피해의식을 느껴 우발적 범죄 같은 이상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부모 역할이 중요하다. 이 이사는 "부모와 함께 충동 조절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이 분노조절장애를 막는 최적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자세를 가지세요. 예컨대, 대화 중 아이가 과도하게 화를 내는 상황에선 언쟁을 계속하기보단, 10~20분 정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대화를 시도하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부모 태도는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