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10㎡(3평) 남짓한 방에서 유성옥(75) 할머니와 두 손자 김효준군(초등학교 3년), 김가영양(초등학교 1년)이 살고 있다.

택시기사는 비탈길을 따라 다가구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 입구에서 “길이 좁아 더 이상 들어가기 힘들다”면서 취재진을 내려줬다.

유씨의 집은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고도 급경사 계단을 올라간 곳에 있었다.

유씨는 “한쪽 다리가 뻗정다리라 일어서기가 힘들다”면서 뼈밖에 남지 않은 다리를 뻗은 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걸을 때 지팡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유씨는 얼마 전 집 밖으로 나오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고생을 했다.



방은 3명이 누우면 꽉 찰 만큼 비좁았다. 그나마 두 명의 조카 손자녀까지 떠안고 살다 내보낸 것이 얼마 전이다.

어두컴컴한 부엌은 이런 곳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해 보였다.

아들 부부는 가영이가 한 살 때 이혼했다. 씀씀이가 헤펐던 며느리는 빚과 아이들만 남겨놓고 떠난 후 재혼을 해서 연락이 끊겼다.

아들은 빚을 갚겠다고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더니 더 큰 빚만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가끔 걸려 오는 전화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20년째 살고 있는 집 전세금은 3200만원.

일부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지원해주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았다. 수입은 정부보조금 110만원인데 대출 상환과 두 손자 교육비로 대부분 나간다.

   

유씨는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면 책 몇 권도 쓸 수 있다”고 했다.

며느리에 대한 원망부터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식당을 하며 아들을 키운 이야기, 추근대는 옆집 남자를 피하려고 몸에 석유를 끼얹었다

불이 붙어 죽을 뻔한 이야기 등이 1시간을 훌쩍 넘기며 이어졌다. 이야기를 하면서 한풀이를 하는 듯해 말을 끊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효준이와 가영이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주며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유씨는 “아이들이 기가 죽을까봐 학교에 갈 때면 지팡이 없이 가고, 고기 등을 사놓고 아빠가 어제 저녁에 사놓고 갔다고 둘러댄다”고 했다.

유씨의 가장 큰 걱정은 뭘까. 유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소원은 아이들이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어요.”

 

 ‘평균 연령 72.6세, 평균 학력 초등학교 졸업 이하 82.3%, 월평균 가구소득 59만7000원, 10명 중 8명은 거동불편이나 건강이상.’



급속한 가족해체가 낳은 조손가정을 지키고 있는 조부모의 실태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전국의 조손가정은 11만9294가구이다. 조손가정은 이혼, 가출, 사망, 실직 등으로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없어진

자녀를 대신해서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녀를 부양하는 가족을 이른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조손가정 실태조사(2010년)에 따르면

손자녀를 키우게 된 이유는 절반 이상(53.2%)이 손자녀 친부모의 이혼이나 재혼이었고 친부모의 ‘가출 및 실종’이라고 답한 경우도 14.7%에 달했다.



각종 수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조손가정은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1세대와 3세대의 결합이다.

신체적·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고령의 조부모가 무책임한 자식을 대신해서 손자녀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이혼율의 증가와 더불어 급속하게 늘고 있는 조손가정은 한국의 유별난 현상이다.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당연한 서구와 달리

결혼 이후에도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큰 데다가 ‘핏줄’은 무조건의 책임을 강요한다. 선진국에서 정부나 사회가 체계적인 복지의 테두리 내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핏줄’에 기대어 늙은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조손가정의 현실은 수치에서 나타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건강문제·손자녀와 소통문제·학습지도 등 삼중고, 사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 영등포종합사회복지관의 김미경 관장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고령의 조부모의 경우 대부분 질병을 수반하고 있는 데다 근로능력은 상실하고 생활능력도 감퇴되다 보니 손자녀를 돌보는 데 문제가 생긴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과 후회밖에 남은 것이 없고 양육부담도 크다 보니 우울증도 심각하다.

삶을 놔버리고 싶다가도 손자녀를 보면 주저앉을 수도 없고 굉장히 복잡한 심리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세대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갈등도 심각하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한 것이 조부모와 손자녀 세대 간의 소통부재였다.

부모와 자식도 말이 통하지 않는 마당에 조부모와는 말할 것도 없다. 아예 대화가 단절된다. 말이 안 통하니 아이들은 밖으로 겉돌게 되고

문제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많다. 조손가정의 경우 조부모와 손자녀 양쪽 모두 근본적인 관계의 단절로 인해 심각한 상처를 안고 있다.

특히 손자녀는 모든 관계의 시작인 부모와의 관계 해체로 인한 애정결핍이 심각하다. 그로 인해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관계에 집착해

너무 이른 나이에 이성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경기도 고양경찰서 이경애 청소년계장(경위)은 얼마 전 인근 중학교에서 학교폭력가해자 교정 대상으로 의뢰가 온

A양(중3)의 학부모 면담을 하다 깜짝 놀랐다. 고양경찰서에서 만난 이 계장은 “학부모로 온 할머니(66)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다’며 상처가 난 경위에 대해 말하기를 애써 피하던 할머니가 울먹이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할머니의 상처는 3살 때부터 키운 외손녀 A양에게 얻어맞은 것이었다. 술, 담배를 일삼는 A양은 걸핏하면 할머니 머리채를 잡고 폭행을 일삼는가 하면

할아버지 뺨을 때리고 뒤로 밀쳐 병원 신세를 지게 하기도 했다. 술에 취해 식칼을 들고 위협하는 등 한번 소동을 피우면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중학교까지는 졸업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고 살고 있다고 했다. A양은 조손가정에서 자랐다.

친부는 이혼 후 아예 연락이 끊겼고 친모는 A양을 떼어놓고 재혼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 키워졌다.

이 계장은 A양을 불러 “한 번만 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가만 안 두겠다”며 경고했다.

이 계장은 “할머니와 전화 연락을 가끔 하는데 그 이후 A양이 소동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가출을 한 상태다”고 말했다.



부모교육전문가 임영주 교수(신구대 유아교육과)는 “조부모들은 부모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2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예 대화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통 안 되지, 이해 부족이지, 그러다 보니 가정교육이 안 된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어른의 롤 모델도 없다. 환경이 나쁠수록 악영향은 더 빨리 받게 돼 있다. 가정환경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데

사실 방치의 한가운데 있다. 보호자는 있지만 보호는 못 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손가정의 B군(초등학교 3년).

학교에서 정서발달 문제 아동으로 의뢰를 해서 아동가족상담센터를 찾았다. 센터를 처음으로 방문한 아동들은 심리검사를 하게 돼 있다.

심리검사 항목 중의 하나인 문장 완성 검사를 위해 검사지를 들여다보던 B군이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르더니 센터를 뛰쳐나갔다.

B군의 검사지엔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상형문자 같은 것들이 끄적여 있었다. B군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한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좌판을 하면서 B군을 키웠다. 하루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 보니 공부나 책 읽기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임영주 교수는 “조손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먹고사는 것도 급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조부모 교육이다.

가정에서 모든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진원지인 조부모를 처방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다”면서

“미리 포기하지 말고 TV를 통해서건 무료강연을 하건 조부모들을 불러내 손자녀와 교감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조부모가 바뀌면 아이들도 바뀐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회가 부양해야 할 짐으로 자라게 된다”고 말했다.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조부모의 거동이 불편한 탓에 위생도 문제다. 아이들이 매끼 인스턴트 식품을 섭취하는 경우도 많다.

박화옥 교수(강남대 사회복지학부)가 발표한 조손가정 실태조사에 따르면 손자녀의 38%가 비염을 앓고 있고 피부염도 16%에 달했다.

또 조부모의 경우는 고혈압, 관절염 등 평균 2.9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부모가 고령이다 보니 보호받아야 할 손자녀들이 거꾸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치레를 하는 조부모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익준 교수(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는 “조손가정 조부모의 연령이 너무 많다.

조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원은 받을지 모르지만 원래의 의도와는 맞지 않게 돌봄이 역전되는 경우도 많다.

조부모의 연령에 맞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경 관장은 “70대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2학년 손녀가 살고 있는 한 조손가정을 방문해 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집은 난장판이고 손녀는 방치되다시피 했다. 아이가 씻지도 않아 냄새가 나니 학교에서는 왕따가 됐다.

지능에 문제가 없는데도 정신지체아 수준으로 학습부진이 심각했다.

주거환경도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불결하기 그지없어 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됐다”면서

“늙고 병든 조부모라도 함께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좋긴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시설에 보내는 것이

아이를 위해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가족형태 중에서 가장 취약한 가정이 조손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조손가정을 위한 별도의 정책은 없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정부로부터 받는 기초수급비가 전부다. 정책의 이원화도 문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요보호아동’으로, 여성가족부에서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지원하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도 없고 통합관리도 어렵다.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 문교정 소장은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욕구 중심이 아니라 대상자 중심으로 돼 있는 것이 문제다.

대상에 따라 아동 따로 노인 따로 정책이다 보니 조손가정의 경우도 통합지원이 안된다.

욕구 중심의 복지정책이 되면 조손가정을 기준으로 놓고 필요한 욕구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부처가 따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시·군·구에 하나의 창구를 만들어놓고 욕구 중심의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아동복지는 요보호아동을 맡아줄 위탁가정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고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위탁가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위탁가정제도는 일반가정 위탁, 친인척 위탁, 대리양육가정 위탁으로 구분되는데, 대리양육가정 위탁이 조손가정에 해당한다.

위탁가정으로 선정된 경우는 아동 1인당 양육보조비 12만원을 받을 수 있고 상해보험을 들어준다.

하지만 조손가정 중 대리양육위탁가정으로 선정된 경우는 7%(2011년 통계) 정도에 불과하다.

위탁가정을 선정하는 기준이 아이를 양육할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보기 때문에 오히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등

형편이 어려운 조손가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외국의 경우 비혈연관계인 일반가정 위탁 신청자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신청자가 극히 드물다.

서울시의 경우 대리양육위탁가정은 629가구인 데 반해 일반위탁가정은 50가구에 불과하다.



지난해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간 김미현(가명)양.

친모는 도박에 빠지고 친부는 집 밖으로 돌다 미현양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이혼을 했다.

친모·친부 모두 양육을 회피하고 친조부모·외조부모들도 외면했다. 다행히 일반위탁가정제도 덕분에 지금의 위탁부모들을 만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위탁부모들은 행여 미현양이 기가 죽을까 걱정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 키워 주었다.

미현양은 환경이 안정되면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미현양은 주말이면 위탁부모들이 보고 싶어 집으로 달려간다.



가족해체의 그늘에서 위태롭게 혈연으로 뭉쳐 있는 조손가정. 가정이 완전한 울타리가 돼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조손가정 아이들은

다시 기초생활수급자로 자라 가난을 대물림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결국 그 짐은 고스란히 사회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핏줄’이라는 이유로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가정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취약세대의 결합인 ‘위기의 가정’을 해체하고

‘안전한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하는지,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