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내가 만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 집은 나중에 지으리라 (중략)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 다이애나 루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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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자주 읊조리는 <내가 만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시입니다. 잠언에 가까운 이 시는 육아에 지치고 고되었던 영유아기를 지나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드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정말 내가 다시 만약 아이를 키운다면 제대로 잘 키울 수 있을 텐데’라는 절절한 아쉬움과 후회로 가슴에 더 와 닿는 시詩인 것 같습니다.

아이와 더 많이 놀아줄 걸, 더 많이 안아줄 걸, 더 많이 이야기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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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와의 행복한 소통

“이제 사춘기 내 자녀와 ‘행복한 소통’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요?” 부모는 묻습니다. 대답을 하려는 데 문득 어느 날 상담을 하던 중학생의 말이 떠오릅니다.

“부모님과의 행복한 소통이요? 말 안 시키는 게 행복한데요...”

어느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화요? 그거 대 놓고 화내는 거 아녜요?

부모는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 큰 맘 먹지만 부모 마음속에는 이미 ‘답정너’가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답만 하라는 식의 대화를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를 기피하는 이유입니다. 부모는 좋게 말하고 싶고 행복한 대화를 기대했지만 아이의 태도와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에 몇 분도 안 가 대화 모드가 ‘대놓고 화내는 대화’가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절실하게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들판을 뛰어놀리라는 시詩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요약해보면 더 많이 사랑하리라. 신뢰하리라. 네가 행복하면 좋으리라....입니다.

단,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안아주고 놀아주어야겠지요.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법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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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 따라다니며 말 시키지 말자

대신, 아이가 말할 때 깊이 이해하며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며 말도 안 되는 말에도 시시비비 가리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이 시기엔 아이의 말을 잘 듣는 게 진짜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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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와 대화할 때 예의를 지키자.

아이 말 끊지 말고, 아이의 말 꼬리 잡지 말고, 아이의 말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껏 말 시켜 놓고 “그걸 말이라고 해?”하는 부모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 자녀는 비판의식도 뚜렷해서 부모가 존중할 만한 분인지도 확인합니다. 아이에게 예의를 지키는 건 자녀에게 ‘자내도 예의를 지키게’ 라는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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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춘기 내 아이는 이미 다 컸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알아서 한다고 하고는 도대체 알아서 하는 게 없어 애 같아 보이지만 자녀는 이미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애야?”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면 아이는 애가 아니라 이미 ‘인격체’입니다. 물론 좌충우돌 모순이 많지만 최소한 아이는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임을 아이와의 대화에서 명심하시면 좋겠습니다.

독기 빼고 우아한 부모 되기

부모로서 독기를 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독기가 있다니 말도 안 돼?’라고 반문하는 부모님들이 부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부모만큼 아이에게 독기를 품은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잘 키우려는 독기, 남보다 기 안 죽이려고, 다른 집 애들만큼 혹은 해 줄만큼 해 주려면 부모는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서적인 것이든 내 아이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니까요. 이 악물고 ‘올인’을 합니다.

그러다 아이가 부모의 의도대로 자라주지 않으면 부모는 또 이를 악뭅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멘트는 우리 부모님의 세대나 지금의 부모 세대나 버전이 조금 다를 뿐 여전히 유효합니다. 부모의 희생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씩씩하게 발휘되고 있으니까요. 누구보다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고, 기대가 높으며 ‘너는 내 운명’인 내 자녀.

그렇기에 부모의 독기는 위험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독기가 아이를 키우기도 하고 자존감을 깎아내리게도 합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독기가 나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독과 약은 상통하는 것이지요. 명약도 과하면 독이 되고 독도 잘 쓰면 약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독기는 아이를 키우기도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독과 주저앉히는 독은 근원이 같습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행복한 대화법도 이 세 독을 잘 쓰면 것이 비법입니다. 내 자녀와의 대화, 다음의 세 가지 독을 유용하게 써 보세요.

먼저 말독을 잘 써야 합니다. 엘머 게이츠의 <분노의 침전물> 실험에서처럼 ‘숨결’도 말이고, 생명을 죽이고 살립니다. 부모님의 말은 어떤 것보다 힘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격려가 되기도 하고, ‘그저 그런 애’라는 낙인효과도 주는 힘을 가진 게 부모의 말독입니다. 부모님의 말독을 잘 써서 내 자녀에게 용기를 주세요. 피그말리온 신화처럼, 로젠탈 박사의 실험처럼.

우리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으로 유능감과 자신감을 느끼고 키웁니다.

두 번 째, 눈독입니다. 비난과 경멸이 담긴 눈길은 말독을 능가하는 독소를 가집니다. ‘인정’과 ‘격려’의 눈길은 용기를 줄 수 있고, 죄책감과 무능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눈길’과 ‘눈독’을 아이는 민감하게 알아차립니다. 아이와 대화할 때, 말의 내용보다 더 신경쓰셔야 할 것이 말없는 가운데 보내는 ‘눈길’입니다. 눈길은 거울을 보며 체크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말에는 ‘소리’가 있어 전달되지만 눈길은 강렬한 ‘빛’으로 전달되거든요. 부모님의 눈길에서 나오는 빛이 아이를 환하게 비춰주셔야 아이가 잘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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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손독’입니다. 잠시라도 스치는 거친 손길은 독입니다. 내 자녀라도 사춘기쯤 되면 스킨십조차 부모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고, ‘넌 소중한 존재’를 느끼게 하는 따뜻한 손길은 언제라도 좋을 듯합니다.

손에 힘을 빼고,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를 어루만져 주세요. 내 아이가 어렸을 적 안아주고, 어루만지며, 뽀뽀하던 그 사랑을 모두 담은 손길이면 좋겠습니다.